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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율리시스 (Ulysses)』의 줄거리, 저자소개 및 느낀점

by 아인슈타인 202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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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yes24 제공 /yes24.co.kr

📚 책 개요

『율리시스』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20세기 영어권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구조적, 상징적 골격으로 삼아, 1904년 6월 16일 단 하루 동안 더블린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줄거리보다 언어, 의식, 형식의 실험으로 유명하며,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독백, 환상, 언어유희, 다중 시점, 고전 문학 패러디 등 문학사상 유례없는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는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에 해당하며, 그의 하루 동안의 방황은 존재의 의미, 정체성, 역사, 종교, 섹슈얼리티, 식민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상징적으로 포괄한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외설 논란으로 금서가 되기도 했으나, 이후 문학의 자유와 실험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재조명되었다.

 

 『율리시스』는 읽기 어렵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문학과 인간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독자의 시험대’이자 ‘작가의 궁극적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 책 줄거리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단 하루 동안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세 주요 인물—스티븐 디달러스, 레오폴드 블룸, 몰리 블룸—의 시선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각각은 『오디세이아』의 텔레마코스, 오디세우스, 페넬로페에 해당한다.

 

1. 텔레마코이아 (Telemachia) – 스티븐 디달러스의 서사

 소설의 첫 3장은 젊은 지식인 스티븐 디달러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는 이전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으로, 아버지와 조국, 종교로부터의 독립을 꿈꾼다. 스티븐은 친구들과 마트인 타워에서 기거하며 예술과 존재, 죽음에 대해 고뇌하지만, 삶에 대한 불만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스티븐은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한 것에 대한 죄의식과, 자신의 예술적 고립감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는 교사로 근무하지만 주변 세계와의 단절을 느끼며, 이질감을 품은 채 하루를 시작한다.

 

2. 오디세이아(Odyssey) –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

4장부터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시선으로 전환된다. 그는 유대계 아일랜드인으로, 광고업자이며 일상 속에서 소외와 경멸을 겪는다. 아침식사로 돼지 간을 요리하고, 아내 몰리의 불륜을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외출한다.

 

 블룸은 더블린을 돌아다니며 장례식에 참석하고, 신문사에 들르며, 목욕탕과 펍, 도서관 등 여러 장소를 전전한다. 그의 일상은 겉보기엔 단조롭지만, 내면의 의식은 풍부하고 역동적이다. 그는 죽은 아들 루디에 대한 슬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부부 관계의 위기 등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방황한다.

 

 한편 그는 도서관에서 스티븐과 엇갈리고, 극장에서 그의 연설을 몰래 듣는 등 점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3. 일치의 순간 – 스티븐과 블룸의 만남

 소설 후반, 스티븐과 블룸은 결국 만난다. 이 만남은 단지 인물 간의 만남을 넘어, 아버지 없는 아들(스티븐)과 아들을 잃은 아버지(블룸)의 상징적 연합이다.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철학과 삶, 예술에 대해 논하고,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한다.

 

 블룸은 스티븐에게 보호자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스티븐은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 채 떠난다. 블룸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 몰리와의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잠긴다.

 

4. 몰리 블룸의 독백 – 페넬로페

마지막 장은 아내 몰리 블룸의 8페이지에 달하는 의식의 흐름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두점 하나 없이 이어지는 이 장은 여성의 성, 사랑, 육체성, 욕망, 기억이 혼재된 텍스트로, 몰리의 삶과 여성의 내면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블룸의 무능, 자신의 외로움, 불륜 상대, 과거의 추억 등을 반추하며, 결국 마지막 문장은 “예”로 끝난다. 이는 삶과 사랑,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해석된다.

 

🧔 작가 소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이다. 그는 언어 실험, 내면 독백, 다층적 상징성, 실존적 주제를 결합한 작품으로 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혁신했다.

 

 조이스는 더블린에서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유럽 여러 도시에서 거주하며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율리시스』(1922), 『핀네건의 경야』(1939) 등의 작품을 통해 점차 복잡하고 실험적인 문학 양식을 추구했다.

 

 그의 문학은 끊임없는 ‘해체’와 ‘재창조’의 과정이었다. 전통적 플롯이나 구문을 거부하고, 의식의 흐름과 언어유희, 신화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사회의 복잡성을 담아내려 했다. 특히 『율리시스』에서는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빌려 현대인의 하루를 신화적 여정으로 전환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위대함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아일랜드 독립과 영국 제국주의를 비판했으며, 종교적 억압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특히 자신의 고향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으며, 그는 이를 ‘마비의 도시’로 묘사하며 아일랜드의 사회적·문화적 폐쇄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율리시스』는 출간 전부터 외설 시비에 휘말려 금서 판정을 받았고, 이후 수많은 법적 논쟁 끝에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조이스는 시력 문제와 가족의 병환,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문학 실험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핀네건의 경야』는 영어 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며 아직도 전면적인 해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1년, 조이스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그는 생전 비판도 많았지만, 사후에 그의 문학은 카뮈, 베케트, 나보코프 등 현대 문학의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 존재로 재평가되었다.

 

🙏 책을 읽고 느낀 점

『율리시스』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완독하는 일이 아니라, 문학의 본질과 인간 정신의 심연을 통과하는 일종의 체험이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러티브는 분절되어 있었고, 인물의 내면과 현실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으며, 장면은 꿈처럼 흐릿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바로 그 ‘혼란’ 속에 이 작품이 가진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진실이 숨어 있었다.

 

 조이스는 독자에게 완성된 메시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완성하는 소설’을 지향하며, 수없이 겹치는 의미층, 상징, 문체 변화 속에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요구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해방감이 있었다. 글을 읽는다는 행위가 단지 정보 수용이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는 참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는 평범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유, 기억, 무의식의 흐름은 경이롭다. 조이스는 인간이 단지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임을 역설하며, 내면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사한다. 블룸, 스티븐, 몰리—이 셋의 시점은 삶의 다면성과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며, 각자의 고독과 소망, 결핍과 성장을 품고 있다.

 

 특히 마지막 몰리의 독백은 여성의 육체성과 욕망, 기억과 사랑에 대한 생생한 진술로 다가왔다. 그것은 문학의 언어가 인간 경험을 어떻게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장면이었다. 몰리의 마지막 “Yes”는 단지 대답이 아니라, 삶에 대한 궁극적 수용이자 긍정이다. 이 장면은 나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감동으로 남았다.

 

『율리시스』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독서 후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다. 이 책은 나에게 인간 존재를 사유하는 도구이자, 언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다시 읽고, 또다시 읽고 싶은, 문학이라는 이름의 미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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